칠순답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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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이 인공지능(AI)이 발전해도 인간이 쓰는 문학 작품과 같은 가능성을 갖출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시가 유통의 장에서 소멸할 가능성은 있지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시적 발견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일 발간된 문예지 '대산문화' 여름호(96호)에 따르면 김혜순은 지난달 22일 소설가 다와다 요코와의 비공개 대담에서 AI와 인간이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을 비교해 설명했다. 기술 발전 속 문학의 미래에 관한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다.
김혜순은 "AI는 학습한 지식을 요약하고, 기술적 오류가 없는 문장으로 출력해낸다"며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쓰는 문학 작품처럼 주어진 텍스트에서 잠재된 맥락을 상정하는 의미 구성의 층위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생태적이거나 문학적인 문해력을 갖춘 인간이 쓴 텍스트는 확장 가능하고 함축적이며 다른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고, 다른 텍스트와 접속한 순간에 다시 실현되어 다른 존재를 가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결국 그 텍스트(인간이 쓴 글)는 잠재적 공간에도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며 "AI 텍스트는 그런 것을 갖출 수 없을 것"이라고 비교했다.
김혜순은 또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가치에 관해 "머지않은 장래에 시라는 장르가 유통의 장에서 소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인간은 자기만의 시적 발견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시를 가동할 것이며, 그렇게 시는 다른 곳으로 스며들어 가 살 것"이라고 말했다.
다와다 요코는 "종이는 아주 훌륭한 문화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에 '아티스트 북'이라는 장르가 있는데, 예술가와 시인이 함께 하나의 오브젝트로서 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저도 ('아티스트 북'을) 몇 권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종이에서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같은 냄새가 나는 '오코노미야키'라는 책"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김혜순과 다와다 요코는 대담에서 젠더가 문학에 미치는 영향,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느끼는 감정 등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총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김혜순은 최근 국내외에서 여성 작가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이유에 대해 "문학 작품 낭독회에 가보면 젊은 여자 독자가 거의 90%"라며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독자의 탄생이 먼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공공건축물은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잘 키운 자식 하나가 집안을 건사해내듯, 랜드마크가 되는 공공건축물은 지역에 소중한 자산이다. 일본 소도시를 다니다보면 이런 사례를 흔히 접한다. 일본 이야기는 잠시 미뤄놓고 전주 이야기부터 해보자.
전주가 도서관 도시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여정을 담은 <도시의 마음>(2025년 5월 출간)이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 김승수는 전주시장 재임 당시 책 읽는 시민들이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며 도서관 정책에 올인했다. 그는 시청사 로비를 책 놀이터로 바꾸고, 특색 있는 도서관을 신축 또는 리모델링함으로써 현실로 옮겼다.
숲속과 한옥마을에 특별한 도서관을 짓고, 폐 동사무소와 파출소를 리모델링해 작은 도서관으로 전환하고, 노후화한 공단에 그림책 도서관을 설립하고, 덕진공원 연못에 세상에 하나뿐인 한옥형 연화정도서관 세웠다.
전주를 찾는 외지인들이 처음 접하는 공공건축물 또한 첫마중길 도서관이다. 또 다음달 개관을 앞둔 아중호수도서관은 길이만 100m에 이르는 국내 최장 곡선 형태 도서관이다. 숲과 정원, 나무와 꽃, 하천과 호수를 낀 도서관은 새로운 볼거리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도서관에서만 시간을 보내려는 여행자들이 잇따랐다. 전주시는 수요가 급증하자 아예 도서관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대박을 쳤다. 저자가 꿈꾸었던 전주다움을 인정받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다가간 것이다.
핵심은 저마다 특색을 살린 도서관에 있다. 모든 도서관은 특색 있는 외관에다 이용자를 염두에 둔 설계와 운용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고정관념을 깬 도서관에서 시민과 여행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며 감동한다.
<도시의 마음>은 공직자에게 필요한 안목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도시가 바뀌면 시민들 삶도 바뀐다. 정책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만든다. 도시에 마음을 담으면 시민들에게 반향이 일어나고, 그 반향은 도시와 사람을 동시에 변화시킨다"고 한다.
그는 이런 생각에서 시민들을 설득하고 공직사회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책을 읽는 내내 성공적인 공공건축물 사례로 꼽는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립도서관과 21세기 미술관,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 시마네(島根) 현립미술관을 떠올렸다. 세 곳 모두 공공건축물로 도시를 바꿨다. 잘 지은 미술관, 도서관으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소멸을 막았다.
나 또한 이들 도시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든 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지방도시 대부분은 엇비슷하다. 매력적인 도시, 활력 있는 도시와 거리가 멀다. 무엇이든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일본은 매년 전국 47개 광역단체를 대상으로 매력도를 발표한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4 매력도 랭킹'에서 1위는 홋카이도(北海道), 47위는 사가(佐賀) 현이었다. 그런데 꼴찌 사가 현에 한국 여행자들이 몰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다케오 시립도서관 때문이다.
인구 5만 명이 채 안 되는 다케오는 수령 3000년 녹나무가 유명하다.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주된 이유는 녹나무가 아니라 도서관이다. 도시 인구의 20배가 넘는 연간 100만 명이 찾는 다케오 도서관이 궁금하지 more info 않을 수 없다.
다케오시는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부터 깼다. 2013년 문을 열 때부터 24시간 연중 운영함으로써 지역 커뮤니티로로 자리잡았다. 시민들은 도서관에서 책 읽기는 물론이고 물건도 사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떤다.
1층 스타벅스 커피숍과 잡화 코너는 얼핏 도서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곳에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 특산물과 전통주까지 구입한다.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룬 외관은 인상적이다.
뒷산을 배경으로 둥근 활시위를 한 도서관은 위압적인 여느 도서관과는 달리 친근하다. 처음 다케오 도서관을 방문한 때는 해질 무렵이었다. 노을에 물든 도서관은 그윽했다. 서울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은 다케오 도서관을 벤치마킹했다.